341p ~ 360p
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(2)
ㅡ 쇼나곤은 여러 물건을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종이를 좋아한다. 쇼나곤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전문가처럼 글을 쓰면서 미치노쿠 지방에서 만든 종이에 손을 올렸던 때를 떠올린다. 당시 사람들은 종이와 나무에 카미, 즉 신적인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믿었다. 쇼나곤의 종이 사랑은 내 안에도 있다. 됴쿄에 갈 때마다 긴자에 있는 이토야에 들른다. 이토야는 문구점인데 이 말은 요요마가 첼리스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. 엄밀하게는 사실이지만 턱없이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뜻이다. 쇼나곤이 찬미하는 많은 물건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심지어 더럽다. 이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 와비라고 부른다. 찢어진 청바지나 낡은 가죽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면 와비를 따른적이 있다는 것이다.
ㅡ 세이 쇼나곤은 분명 재치 있고 통찰력 있는 작가지만, 과연 철학자였을까?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철학자들을 다룬 그 어떤 철학 개론서에서도 쇼나곤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다. 당연하다. 쇼나곤은 철학 체계를 구상하지도, 우주와 그 안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지도 않았다. 쇼나곤은 개념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. 쇼나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들과 사물들, 아름다운 사물들이었다. 하지만 한 학자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확실히 철학자다. 니체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삶을 더욱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철학자다.
ㅡ 쇼나곤의 철학에 함축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.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한다..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.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.
# 내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. 요즘 재택 근무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. 책상에는 지금 읽고 있는 책, 모니터, 노트북, 커피잔, 키보드, 마우스, 핸드폰이 있다. 타이핑을 할 때마다 키보드에서 딸깍 소리가 나고, 선선한 가을날에 원두향도 좋다. 그리고 책상, 사람 모두 다 어떤 목적으로 인하여 책상을 사용한다. 쇼나곤이 말하는 것 사물 하나가 사람들 세상을 보여주는 것,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,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.
ㅡ 내가 바라지 않는 것들. 맙소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짜증나는 것들. 물론 쇼나곤은 큰 생각과 씨름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정신도 꿰뚫어보지만 별로 감명받지 않는다. 나는 디테일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. 광각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처럼 디테일은 넘어가고, 웅장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. 이런 사이즈 주의는 내 인생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. 반찬통 여는 것은 잘하지만 닫는 것은 까먹는다. 책을 쓰지만 글씨는 큼찍하게 못 쓴다. 세이 쇼나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. 어느 날 쇼나곤이 이 잘 짜인 다다미 위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데이시 중궁이 말했다. "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것이 네게 위안을 주는구나." "예 왕비마마 정말 위로가 됩니다. 하지만 마마께서 생각하시는 것 만큼 사소하지 않답니다."
-> 슬픔은 무척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환상이다. 어쩌면 슬픔은 우리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. 어쩌면 꼭 용감무쌍한 행동이 필요한것은 아닐 수도 있다.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,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.
#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들 정작 무거운 것은 아니다. 사소한 것들 까보면 사소한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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